반응과 균형
재해라고 불리는 여러 자연 현상은 하나님의 창조 이후와 인류의 존재 이래 계속 되어오고 있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지구 공동체에, 빈도의 차이가 다르겠지만, 어느 곳이든지 온전히 안전한 곳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에 놓인 분들에게는 위로를 전합니다. 구약 이후, 예수님의 때에도 그분이 말씀하셨듯, ‘ 무너진 망대로 여러 사람이 죽었음에, 저들이 너희보다 죄가 더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것 ‘ 이라고 하셨고, ‘ 자연 재해와 인류의 해악이 발생할 것이며 이는 재앙의 시작이라 ‘ 고 언급하신 이후, 이천여 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모습도 있습니다. 여러 곳의 폭풍우 피해와 지진의 모습 등이 근래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의 재해는 왜 발생하며, 그것의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인류의 죄악 된 모습의 결과와의 연관된 견해는 새로운 것이 아닌 것임에도 그것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라는 관점도 인간의 행위가 지구 활동에 더해져, 인류와 지구와의 공동 행위의 결과에 이르게 하는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도 같은 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지구도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전해진 가르침인 성경의 말씀에 따라, 지구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와 서로간에 그리고 피조물인 자연을 잘 관리하였을 때, 인류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질이 결정될 것을 예견해 보는 것은 그렇게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원론적인 얘기이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연의 관점으로는 지구 구성원인 인간의 행위에 대한 반응과 그 보답으로 자연 재해로 반응을 하고 있다는 견해를 가질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서로간의 반목과 대립이라기 보다는 특정 인류의 무분별함에 대한 결과가 사실임에도, 그것에 자연이 보복성 반응을 해 오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앞서의 자동차의 예와 신체의 생명 유지 활동 모습과도 같이, 그 행위에 대한 결과라는 관점이 좀 더 유효하다고 하겠으며, 책임의 상당부분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는 관점도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자연의 재해 모습은 한편으로는, 주로 인류에 의해 발생된 여러 조건에 대하여 자연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 따른 주된 필연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몸에 유익하지 않은 행동을 한 후, 몸이 괴로운 것은 사실임에도, 이는 몸이 자가 면역 활동과 몸의 회복을 위한 과정에 일어나는 필연적 고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의 일차적 책임은 주변 환경을 탓할 수 있어도, 인간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듯, 자연 재해의 주요한 원인은 그 원인 제공자인 인간의 활동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자신이 전적으로 행하지는 않았을 수 있으며, 여타의 원인, 타인의 행위 등으로 인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만, 살펴 들어가 보면, 그 영향에서 자신의 행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 지역의 오염 발생을 주 원인으로 꼽는 여러 문제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 해당 국가, 지역에서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가져다 사용하고 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듯, 직 간접적으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있다면, 미개하고 못사는 지역과 국가의 사람들이 오히려 불평을 가져야 하겠습니다만, 그들은 발언권이 약하고, 주로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또한 피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사역 당시에, 돌로 맞아 죽게 될 간음한 여인과 그녀를 정죄하는 무리들에게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 8:7) ‘고 하셨을 때, 아무도 그러지 못했듯, 죄 없는 존재가 없음의 통찰은 이미 예수님이 오래 전에 짚어 주신 말씀임을 확인합니다.
자연 재해라고 인간이 판단하고 있는 그 모습들, 자연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 인가. 앞서의 언급과도 같이, 자연은 그 자체로 계속 인간이 발생시킨 여러 현상을 치료하고 있다는 접근으로 살펴봅니다. 문제를 많이 발생시킨 결과로, 그 것을 치료하려고 응급, 대수술을 하게 된 것이며, 그 결과로 흉터, 통증, 고통이 심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모든 잘못을 외부로 돌리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만, 그 인간의 잘못된 행동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음도 살펴야 하겠습니다. 우주의 공간에 떠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는 태양계의 지구 공동체는 외부의 차가움과 내부의 뜨거움의 중간에서, 우주와 태양계의 여러 모습 간에 그리고 인류의 행위에 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끊임없이 지각을 만들어 내고,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하고, 열기를 방출하고, 식혀야 하며, 늘어난 해수량, 해수면의 높낮이의 조절을 위해 구름과 비로 연계하여 대륙으로 무게를 이동하고, 땅을 적시는 등의 균형 이루기의 자율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 거대한 폭풍우가 등장한다면, 이는 해수면의 상승에 따른 수면 조절 등이 필요하기에 대륙으로 수분을 이동시키기 위한 방편 가운데 긴급한 처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륙이 그간 가뭄이 심했다면, 이는 어디선가 있을 불균형에 대한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한 자연의 자율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 비, 눈, 구름 등의 모습은 이와 연계되어 있으며, 때때로 등장하는 거대한 재해라고 여기는 모습의 등장은 균형을 이루기에 급격한 변수의 등장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주에의 조건에 대한 균형 모습도 훨씬 방대한 모습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결국은 하나님이 어디론가 향해 가게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지구 공동체 내부와 함께 태양계와 우주라는 거대 공간의 변수를 가늠해 본다면, 때로 등장하는 자연 재해에도 안타깝지만 그럴만한 사유가 있으며, 태양계의 지구가 운행해 나아가면서 겪고 있는 수 많은 변수 가운데 중요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통해 일부나마 이해에 이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경험하는 당사자의 고통을 간과할 수는 없겠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도 유효한 경우가 있겠습니다만, 모든 것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드신 이유와 그 존재들간의 자율적 운행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가동하고 계시다고 하겠으며, 그 피조물 간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는 모습이 과거 이래로 앞으로도 계속 펼쳐질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때로는 착각하기도 하며, 해석과 판단의 실수, 스스로와 서로간의 무지, 오해를 통해 비난과 상처 등의 고통에 이르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또한 앞으로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때로 발생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전해주신 가르침인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는 모습도 함께할 것이므로 그 모습들 간에 또한, 균형을 이루며 삶의 모습은 지속되어 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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